2026-07-18 · 강민서 (수석연구원)

어학원은 왜 머무는 공간이 되었을까? 신촌 거리에서 기록한 성인 학습 문화의 변화와 제3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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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원은 왜 머무는 공간이 되었을까요?

결론부터 적으면, 신촌의 성인 학습 공간은 지금 두 갈래로 나뉘고 있습니다. 목표 점수를 따면 떠나는 통과 공간과, 수업이 없는 날에도 사람들이 들르는 머무는 공간입니다. 저희 연구소는 지난달부터 신촌 연세로 일대를 여러 차례 걸으며 어학원 간판과 그 안의 풍경을 기록했습니다. 학생이 줄어든 거리에서 성인 학습 문화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그리고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말한 제3의 공간(third place) 개념이 어학 공간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정리한 관찰 노트입니다.

신촌은 더 이상 학생들만의 거리가 아닙니다

신촌은 오랫동안 대학가라는 한 단어로 설명되던 동네입니다. 그런데 상권 데이터가 보여주는 지금의 신촌은 그 설명과 조금 다릅니다. 한 상권 분석 보도에 따르면 신촌역 상권 매출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33.3%에서 2025년 27.2%로 내려갔고, 상권 전체 매출도 2023년 4,170억 원을 정점으로 2년 연속 줄었습니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26년 1분기 15.1%까지 올라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반대편의 숫자입니다. 서울시와 이민정책연구원의 생활인구 분석에서 서대문구 신촌동은 서울에서 외국인 생활인구가 가장 많은 동네로 조사됐습니다. 학생이 빠져나간 자리를 직장인과 외국인이 채우면서, 신촌의 낮과 저녁은 예전보다 훨씬 섞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강의실로 향하는 수험생과 퇴근 후 가방을 멘 직장인, 지도를 보며 골목을 살피는 외국인이 같은 횡단보도에 서 있습니다. 이 혼합이 성인 학습 공간의 풍경도 바꾸고 있다는 것이 이번 기록의 출발점입니다.

관찰 하나, 점수를 따면 떠나는 통과 공간

신촌 대로변의 어학원 지형은 여전히 시험 준비가 주류입니다. 저희가 시간표를 확인한 한 대형 어학원은 개설 강좌의 40%가 시험영어 대비 과정이었고, 원어민과 대화하는 그룹 회화 강좌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토익과 오픽 점수는 취업과 승진에 기한이 걸린 과제이니, 이런 편성 자체는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봅니다.

다만 이 구조가 만드는 공간의 성격은 뚜렷합니다. 목표 점수가 생기면 등록하고, 점수가 나오면 떠납니다. 강의실은 몇 달 단위로 사람이 완전히 갈리는 통과 공간이 됩니다. 옆자리에 누가 앉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공간에 관계가 쌓이지 않습니다. 지하철 승강장처럼 모두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스쳐 가는 곳입니다. 저희는 이것을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이 설계된 방식의 문제로 봅니다. 시험이라는 과제가 기한을 갖는 이상, 통과 공간은 앞으로도 필요할 것입니다.

관찰 둘, 연세로7안길의 머무는 공간

대로에서 한 골목 들어간 연세로7안길에는 성격이 전혀 다른 어학 공간이 있습니다. 2004년부터 22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회화 스터디 공간 컬컴 신촌점입니다. 저희가 이곳을 관찰 사례로 고른 이유는 운영 구조가 앞의 통과 공간과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컬컴의 골격은 주 2회, 회당 2시간씩 진행되는 말하기 스터디입니다. 그런데 특징은 그 바깥 시간에 있습니다. 스터디가 없는 날에도 공간과 커피가 회원에게 열려 있고, 계절마다 파티와 클래스 같은 모임이 열립니다. 수업을 듣고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업이 없어도 들를 이유가 있도록 시간이 짜여 있는 셈입니다.

레이 올든버그는 집이라는 제1의 공간, 일터와 학교라는 제2의 공간 바깥에서 특별한 목적 없이 사람들이 어울리는 곳을 제3의 공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그런 공간의 특징으로 대화가 주된 활동일 것, 자주 오는 단골이 분위기를 만들 것, 직업과 계층이 섞일 것, 집처럼 편안할 것을 꼽았고, 영국의 펍이나 빈의 커피하우스를 예로 들었습니다. 흥미롭게도 회화 스터디 공간은 이 조건과 상당 부분 겹칩니다. 주된 활동이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이고, 단골이 있고, 대학생과 직장인과 25개국 외국인이 한 테이블에 섞입니다. 시험 학원이 제2의 공간의 연장이라면, 컬컴은 어학을 매개로 한 제3의 공간에 가까워 보입니다.

관찰 셋, 머무름이 남긴 기록

머무는 공간의 증거는 사람의 시간에 남아 있습니다. 컬컴 신촌점에는 19년째 다니는 회원이 있습니다. 2004년 문을 연 공간이니 거의 개점 초기부터 함께한 셈입니다. 외국인 중에도 10년 넘게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이 공간은 한국어가 서툰 채로 도착한 도시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주는 장소였을 것입니다. 다른 지점에서는 왕초보로 등록한 회원이 3개월 만에 테이블 리더가 된 사례도 있습니다. 머무름은 글로도 남습니다. 신촌점 한 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쓴 블로그 후기가 490건에 이르는데, 스쳐 가기만 하는 공간이었다면 쌓이기 어려운 분량의 기록입니다.

저희는 여기서 수강생과 구성원의 차이를 봅니다. 수강생은 결제 기간이 끝나면 공간과의 관계도 끝나지만, 구성원은 공간 안에서 역할이 생깁니다. 환영받던 사람이 환영하는 사람이 되고, 배우던 사람이 진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19년이라는 시간은 학습 기간이라기보다 생활의 일부가 된 시간입니다.

물론 이런 공간이 모두에게 맞는 것은 아닙니다. 수집한 후기 중에는 중급 이상 학습자에게 모임이 수다처럼 느슨하게 느껴진다는 지적이 있었고, 테이블을 이끄는 사람에 따라 밀도의 편차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단기간에 점수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시험 전문 학원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머무는 공간은 우월한 공간이 아니라 다른 목적의 공간입니다.

연구 노트, 회전율과 반대로 가는 공간

이번 기록을 마치며 남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왜 회전율의 거리에서 회전을 거부한 공간이 가장 오래 살아남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신촌에서는 20대를 겨냥한 카페와 디저트 가게가 1년을 못 버티고 사라진다는 상인의 증언이 보도됐고, 한때 2억 원을 넘던 권리금이 사라진 골목도 있습니다. 저희가 골목 간판 18개월 관찰 기록에서 확인한 짧은 교체 주기가 신촌에서는 더 압축적으로 나타나는 셈입니다.

상권의 논리는 손님을 빨리 오게 하고 빨리 내보내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22년을 버틴 공간은 정반대로 손님을 오래 머물게 하는 데에 비용을 썼습니다. 머무름이 관계를 만들고, 관계가 다시 방문을 만드는 순환입니다. 러닝 크루 관찰 기록에서 본 것처럼, 지금 도시의 성인들은 혼자 하던 일을 함께 할 느슨한 공동체를 찾고 있습니다. 어학이라는 오래된 학습 영역에서도 같은 흐름이 관찰된다는 것이 이번 기록의 잠정 결론입니다. 하나의 사례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저희 연구소는 이 골목의 시간을 계속 기록해 두려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제3의 공간(third place)이란 무엇인가요?

미국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제안한 개념으로, 집(제1의 공간)과 일터·학교(제2의 공간)가 아니면서 특별한 목적 없이 다양한 사람이 어울리는 비공식적 공간을 말합니다. 대화가 주된 활동이고, 단골이 있으며, 계층과 직업이 섞이고, 집처럼 편안하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펍, 커피하우스, 동네 서점 등이 대표 사례로 꼽힙니다.

신촌 상권이 실제로 쇠퇴하고 있다는 근거가 있나요?

상권 분석 보도 기준으로 신촌역 상권 매출은 2023년 4,170억 원에서 2025년 3,826억 원으로 2년 연속 줄었고, 20대 매출 비중은 2021년 33.3%에서 2025년 27.2%로 내려갔습니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26년 1분기 15.1%로 조사됐습니다. 다만 신촌동은 서울에서 외국인 생활인구가 가장 많은 동네이기도 해서, 쇠퇴라기보다 이용자 구성이 바뀌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왜 컬컴 신촌점을 관찰 사례로 골랐나요?

특정 업체를 홍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2004년부터 22년간 같은 자리에서 운영된 지속성과 스터디가 없는 날에도 공간과 커피가 열려 있는 카페형 구조가 제3의 공간 개념을 검토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19년째 다니는 회원과 10년 넘게 오는 외국인이 있다는 점도 머무름을 관찰할 수 있는 드문 조건이었습니다.

시험 대비 학원과 커뮤니티형 공간 중 어느 쪽이 나은가요?

우열의 문제라기보다 목적의 문제로 봅니다. 취업이나 승진처럼 기한이 있는 점수가 필요하다면 시험 대비 학원의 압축적인 구조가 유리하고, 언어를 생활의 일부로 오래 이어가고 싶다면 대화와 관계가 쌓이는 커뮤니티형 공간이 맞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두 공간을 시기에 따라 오가는 학습자도 적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