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7 · 강민서 (수석연구원)

취향에 돈을 쓰는 사람들은 왜 늘었을까? 성수 팝업과 취미 모임 관찰로 본 취향 소비 문화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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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하지도않은 물건에 사람들은 왜 줄을 서서 돈을 쓸까?

취향 소비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소비의 기준이 '얼마나 필요한가'에서 '어떤 기분이 드는가'로 옮겨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2024년 1월부터 11월까지 전국에 문을 연 팝업스토어는 1,431개였고, 그중 서울 성동구 한 곳이 35.53%를 차지했습니다.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는 물건을 사려고 두세 시간씩 줄을 서는 풍경은, 취향이 곧 소비의 이유가 된 시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취향 소비는 유행을 따라가는 소비가 아니라, 나를 설명하는 물건과 경험을 고르는 소비인데요. 이 글은 성수동 팝업 골목과 취미 모임 현장을 관찰한 기록으로, 취향 소비 문화가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정리했습니다.

목차

주말 성수동 골목에서 본 세 시간의 줄

토요일 오후 두 시, 성수동 연무장길의 한 팝업스토어 앞에는 이미 40명 남짓한 줄이 서 있었습니다. 저희 관찰팀이 앞뒤로 서 있던 사람들에게 무엇을 사러 왔는지 물었을 때, 정작 특정 제품을 콕 집어 말한 사람은 절반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은 "요즘 여기가 유명하다길래", "친구가 인증샷 올린 걸 보고" 왔다고 답했는데요. 이들이 사러 온 것은 물건이라기보다 그 공간에 다녀왔다는 경험 자체에 가까웠습니다.

줄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 봤더니, 매장의 절반 이상이 판매대가 아니라 사진 찍는 공간이었습니다. 벽 한 면을 브랜드 로고로 채우고, 조명과 소품을 배치해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그림이 되도록 꾸며 두었더군요. 실제로 물건을 계산대에 들고 간 사람보다, 휴대폰을 들고 벽 앞에 선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한 20대 방문객은 "사는 것보다 왔다는 기록이 남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날 저녁, 세 블록 떨어진 골목의 작은 도자기 공방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예닐곱 명이 둘러앉아 손으로 컵을 빚고 있었는데, 참가비가 결코 저렴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자리는 일찌감치 마감된 상태였습니다. 낮의 팝업 줄과 저녁의 공방 자리는 겉보기에 달라 보였지만, 두 곳 모두 '내 취향을 확인하고 남기려는' 같은 욕구가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었습니다.

관찰팀이 하루 동안 성수동 골목을 오가며 세어 본 팝업만 열한 곳이었습니다. 두 블록을 걷는 동안 마주친 매장이 대부분 임시로 꾸며진 공간이었고, 지난달 왔을 때와는 간판이 통째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어떤 곳은 향수 브랜드, 어떤 곳은 애니메이션 캐릭터, 또 어떤 곳은 이름도 낯선 신생 디저트 가게였는데요. 이렇게 짧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공간들이 골목 전체의 표정을 몇 주 단위로 바꾸고 있었습니다. 단골이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릴 만큼, 소비의 무대가 빠르게 회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가성비가 아니라 가심비, 취향 소비란 무엇인가

취향 소비를 한 줄로 말하면, 가격 대비 성능이 아니라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기준으로 삼는 소비입니다. 흔히 '가성비'와 대비해 '가심비'라고 부르는데요. 같은 돈을 쓰더라도 그 소비가 나를 얼마나 설명해 주는지, 얼마나 즐거움을 남기는지를 먼저 따지는 태도입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시장 구조의 문제가 깔려 있습니다. 물건이 넘쳐나고 품질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이제 '더 좋은 제품'만으로는 사람의 지갑을 열기 어려워졌습니다. 웬만한 물건은 검색 몇 번이면 비슷한 대안을 찾을수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소비의 무게중심이 '무엇을 사느냐'에서 '왜, 어떤 기분으로 사느냐'로 넘어갔습니다.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시대가 저물고, 나를 드러내는 소비가 그 빈자리를 메운 셈입니다.

디깅(digging) 소비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자신이 몰두하는 영역을 깊이 파고들며 관련된 물건과 경험을 아낌없이 사들이는 방식인데요. 남들이 보기엔 과해 보여도, 본인에게는 취미이자 정체성에 대한 투자에 가깝습니다.

구분가성비 소비취향 소비(가심비)
판단 기준가격 대비 성능가격 대비 만족·의미
구매 이유필요·실용정체성·경험·감정
공유 방식가격 비교·후기인증샷·취향 공유
대표 장면최저가 검색팝업 대기 줄, 취미 클래스

물론 두 소비가 칼로 자르듯 나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사람이 생필품은 최저가로 사면서, 좋아하는 분야에는 아낌없이 쓰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후자의 비중이 눈에 띄게 커졌다는 점입니다.

팝업스토어는 어떻게 취향의 무대가 되었나

팝업스토어는 취향 소비가 오프라인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무대입니다. 짧게는 며칠, 길어야 몇 주만 운영하고 사라지는 임시 매장인데요. 바로 그 '지금 아니면 못 본다'는 한정성이 사람을 끌어당깁니다.

숫자로 보면 성장세가 뚜렷합니다. 한 업계 집계에 따르면 팝업스토어 시장은 2년 만에 약 3배로 커졌고, 2024년 1~11월에만 전국에서 1,431개가 문을 열었습니다. 그중 IP(지식재산) 기반 팝업이 21.8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요. 좋아하는 캐릭터나 콘텐츠를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려는 수요가 그만큼 크다는 뜻입니다. 초기에는 성수동에 쏠려 있던 팝업이 이제 서울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흥미로운 건 팝업의 목적이 판매에서 경험으로 옮겨갔다는 사실입니다. 예전 팝업이 재고를 빨리 파는 창구였다면, 지금은 브랜드가 자신의 세계관을 보여주고 방문객이 그걸 사진으로 남기는 체험 공간에 가깝습니다. 온라인에서 채울 수 없는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하려고, 오프라인 매장이 오히려 늘어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성수동과 도산공원 일대에는 한 해에만 80여 개의 플래그십 매장이 문을 열며, 취향을 담은공간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관찰팀이 성수동에서 만난 한 방문객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물건은 나중에 온라인으로 사도 되는데, 이 분위기는 여기서만 느낄 수 있잖아요." 팝업이 파는 것은 결국 물건이 아니라 그 순간의 기분과 이야기라는 걸 압축한 문장이었습니다.

취향이 모임이 되는 순간, 나노 커뮤니티

취향 소비는 혼자 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으로 이어집니다. 최근 소비 트렌드에서 '나노 커뮤니티'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인데요. 모두가 아는 유행보다, 우리끼리만 공유하는 좁고 깊은 취향에 더 몰입하는 흐름입니다.

이 변화는 취미 기반 모임 플랫폼의 성장에서 뚜렷하게 확인됩니다. 한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는 코로나19를 거치며 규모가 크게 달라졋습니다. 2021년 1월 31개 모임으로 출발했던 것이 2022년 6월에는 신규 모임만 9,300개로 늘었고, 회원은 1만 8천 명에서 23만 명으로 불었습니다. 독서, 러닝, 와인, 필름 사진처럼 예전 같으면 혼자 하던 취미가 이제는 모임의 형태로 굴러가고 있는데요.

지표2021년 1월이후 성장
모임 수31개2022년 6월 신규 9,300개
가입 회원1만 8천 명23만 명

관찰팀이 참여해 본 한 필름 사진 모임에서는, 참가자들이 서로의 사진을 돌려 보며 어떤 필름을 썼는지, 어디서 현상했는지를 한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나눴습니다. 대화의 대부분이 결국 '무엇을 어떻게 사서 즐겼는가'로 수렴했는데요. 취향이 소비를 낳고, 그 소비가 다시 모임을 통해 공유되며 더 깊은 소비로 이어지는 순환이 여기서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임의 특징은 폐쇄적이라기보다 선별적이라는 점입니다. 아무나 오는 대중적 공간이 아니라, 같은 결의 취향을 가진 사람만 모이는 자리이기에 소속감이 큽니다. 사람들은 그 소속감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씁니다.

취향 소비의 그늘, 피로와 쏠림

취향 소비가 밝은 면만 가진 것은 아닙니다. 관찰을 이어 가다 보면 몇 가지 그늘도 함께 보입니다. 가장 자주 마주친 것은 '취향 피로'라 부를 만한 감정이었는데요. 팝업을 몇 군데 돌던 한 방문객은 "요즘은 안 가면 뒤처지는 느낌이라 오긴 왔는데, 솔직히 지친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취향을 즐기려던 소비가 어느새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숙제처럼 변해 버린 것입니다.

두 번째 그늘은 쏠림입니다. 성수동 한 곳이 전국 팝업의 3분의 1을 차지한다는 통계가 말해 주듯, 취향 소비의 무대는 특정 지역과 특정 감성에 심하게 몰려 있습니다. 비슷한 톤의 인테리어, 비슷한 사진 배경, 비슷한 굿즈가 반복되면서 '다 똑같아 보인다'는 말도 현장에서 심심찮게 들렸습니다. 개성을 좇는 소비가 오히려 획일화되는 역설인데요.

세 번째는 비용 부담입니다. 취향에 쓰는 돈이 늘수록, 그 취향을 유지하기 위한 지출도 함께 커집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지키려다 경제적 무리를 겪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취향 소비를 건강하게 즐기려면, 무엇을 위해 쓰는지 스스로 묻는 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관찰자로서도 이 문화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그리지 않으려 애쓴 이유입니다.

취향 소비를 읽는 관찰 가이드

취향 소비는 통계로만 보면 놓치기 쉽습니다. 직접 현장을 관찰할 때 그 결이 더 잘 드러나는데요. 생활문화를 기록하는 관점에서, 초보자도 따라 할 수 있는 네 단계를 정리했습니다.

1단계, 줄과 계산대의 비율을 보십시오. 팝업이나 매장에서 줄 선 사람 대비 실제로 계산하는 사람의 비율을 세어 보면, 그 공간이 파는 것이 물건인지 경험인지 금세 드러납니다.

2단계, 사람들이 무엇을 사진 찍는지 관찰하십시오. 제품을 찍는지, 공간을 찍는지, 자기 자신을 찍는지에 따라 소비의 동기가 달라집니다. 취향 소비 공간일수록 제품보다 배경과 분위기를 찍는 손이 많습니다.

3단계, 대화의 주제를 따라가 보십시오. 취미 모임이라면 사람들이 가격을 말하는지, 취향과 경험을 말하는지 귀 기울여 봅니다. 후자가 많을수록 취향 소비의 밀도가 높은 자리입니다.

4단계, 재방문의 흔적을 찾으십시오. 단골의 존재, 반복 구매, 모임의 정기성 같은 신호는 그 소비가 일회성 유행인지 자리 잡은 문화인지를 가릅니다.

이 네 가지를 며칠만 기록해도, 취향 소비가 우리 동네에서 어떤 모습으로 뿌리내리고 있는지 감이 잡힙니다. 거창한 도구가 필요한 게 아니라, 오래 머무르며 보는 눈이면 충분합니다.

관찰팀의 경험을 하나 덧붙이면, 같은 공간을 최소 두 번 이상 다른 요일에 찾아가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평일 낮과 주말 저녁의 방문객 구성이 전혀 달랐기 때문인데요. 한 번의 방문으로 내린 판단은 곧잘 빗나갔습니다. 취향 소비는 시간대와 계절에 따라 얼굴을 바꾸기에, 여러 번 겹쳐 보는 관찰이 그만큼 정확한 그림을 남겼습니다. 결국 취향 소비를 읽는 일은 사람을 읽는 일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취향 소비와 과소비는 어떻게 다른가요? 과소비는 능력을 넘어선 지출 자체를 가리키는 반면, 취향 소비는 지출의 '기준'이 성능에서 만족·의미로 옮겨간 소비 태도를 말합니다. 취향 소비를 하는 사람도 생필품은 알뜰하게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아하는 분야에 선택적으로 집중해 쓴다는 점에서, 무분별한 과소비와는 결이 다릅니다.
취향 소비는 MZ세대만의 현상인가요? 시작은 2030세대가 주도했지만, 지금은 세대를 넘어 확산하고 있습니다. 등산, 캠핑, 원예처럼 중장년층이 몰입하는 취미 영역에서도 같은 방식의 소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이보다는 '나를 설명하는 소비를 얼마나 중시하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입니다.
팝업스토어에 줄 서는 게 정말 취향 소비인가요? 줄을 서는 행위 자체보다, 그 동기를 봐야 합니다. 특정 물건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 공간에 다녀온 경험과 기록을 원해 줄을 선다면, 이는 전형적인 취향·경험 소비에 해당합니다. 실제 관찰에서도 방문객의 상당수가 구매보다 방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취향 소비를 관찰하려면 특별한 준비가 필요한가요? 전문 장비나 자료 없이도 가능합니다. 메모장 하나면 충분합니다. 줄과 계산대의 비율, 사람들이 찍는 대상, 대화의 주제, 재방문 흔적을 며칠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그 공간의 소비 성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래 머무르며 지켜보는 태도가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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