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 공간 배치는 요즘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집 안을 보는 출발점은 평수가 아니라 벽이 무엇을 향하고 있느냐입니다. 열한 집을 돌며 거실을 기록해 보니, 소파와 TV가 마주 보는 배치는 네 집뿐이었습니다. 1인당 주거면적은 36.0㎡로 1년 전과 같은데, 같은 면적 안에서 방과 거실이 맡는 역할은 계속 바뀌고 있었습니다. TV 이용률은 70.9%로 여전히 높지만 일상에서 TV를 필수 매체로 꼽는 사람은 23.0%에 그칩니다. 화면이 벽에서 손으로 옮겨간 자리에, 책상과 옷과 운동기구가 들어왔습니다.
목차
- 열한 집의 거실을 들여다보며 적은 것
- 거실 벽에서 TV가 밀려난 자리
- 방은 왜 이름을 잃고 기능으로 불리게 됐을까
- 드레스룸 30%, 알파룸 5%가 말해주는 것
- 콘센트 위치가 가구 배치를 결정한다
- 좁은 집은 어떻게 공간을 겹쳐 쓸까
- FAQ
- 같이 읽으면 좋은 것들
열한 집의 거실을 들여다보며 적은 것
작년 가을부터 올여름까지, 서울과 경기 일곱 곳에서 열한 집을 방문해 거실 사진을 찍고 배치를 그림으로 옮겼습니다. 34평 아파트 세 집, 24평 두 집, 18평 두 집, 원룸 세 집, 구축 빌라 한 집이었습니다. 집주인의 허락을 받고 가구 위치와 콘센트 위치, 조명 개수, 그리고 가장 오래 앉아 있는 자리를 표시했습니다.
가장 눈에 띈 건 소파의 방향이었습니다. 열한 집 중 소파가 TV를 정면으로 보고 있던 건 네 집. 세 집은 소파가 창문을 향해 있었고, 두 집은 소파 대신 큰 테이블이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두 집은 아예 소파가 없었습니다.
34평 아파트에 사는 40대 부부의 집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TV는 벽에 걸려 있었지만 리모컨은 서랍 안에 있었고, 부부는 저녁마다 각자 태블릿을 들고 식탁에 앉는다고 했습니다. "TV는 명절에 부모님 오시면 켜요." 그 말을 하면서 웃었는데, 실제로 TV 아래 선반에는 먼지가 얇게 쌓여 있었습니다.
원룸 세 집에서는 다른 풍경이 보였습니다. 6평 남짓한 방 안에서 침대와 책상 사이 거리가 한 걸음이었고, 옷걸이 행거가 벽 하나를 통째로 차지했습니다. 붙박이장이 없는 집일수록 행거가 커졌습니다. 한 집은 행거가 두 개였고, 그중 하나는 계절 지난 옷을 걸어두는 용도라 6개월째 손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측정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던 건, 집에서 가장 오래 앉아 있는 자리가 거실 소파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열한 집 중 여덟 집에서 그 자리는 책상이거나 식탁이었습니다.
거실 벽에서 TV가 밀려난 자리
한 줄로 요약하면, TV가 사라진 게 아니라 중심에서 물러났습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2025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를 보면 TV 이용률은 70.9%로 전년 69.1%보다 오히려 1.8%p 올랐습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TV를 필수 매체로 꼽은 비율은 23.0%입니다. 스마트폰은 74.9%고요. 기기는 여전히 집에 있지만, 하루를 어디에 맞추느냐를 물으면 대답이 달라지는 겁니다.
거실 배치가 흔들린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예전 거실은 TV를 기준으로 설계된 방이었습니다. 소파는 TV를 보기 좋은 거리에 놓였고, 조명은 화면 반사를 피하는 위치에 달렸습니다. 화면이 손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 기준점이 사라졌습니다. 기준점이 없어진 방은 여러 용도가 겹쳐 들어옵니다.
거실이 새로 맡게 된 일들
관찰한 열한 집에서 거실이 실제로 쓰이던 용도를 세어 보면 이렇습니다.
| 용도 | 집 수 |
|---|---|
| 식사·차 마시기 | 9 |
| 재택근무·공부 | 6 |
| 운동·스트레칭 | 5 |
| TV 시청 | 4 |
| 손님 접대 | 3 |
한 방이 다섯 가지 일을 나눠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거실에서는 접거나 밀 수 있는 가구가 늘어납니다. 접이식 테이블, 바퀴 달린 수납장, 벽에 붙였다 펴는 건조대 같은 것들이요. 열한 집 중 여섯 집에 바퀴 달린 가구가 있었습니다.
재밌는 건 50대 이상에서는 결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같은 조사에서 50대 이상의 80% 이상이 주 5일 이상 TV를 본다고 답했습니다. 제가 방문한 60대 부부의 집에서는 소파가 TV를 정면으로 보고 있었고, 리모컨은 소파 팔걸이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세대에 따라 거실의 중심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방은 왜 이름을 잃고 기능으로 불리게 됐을까
한 줄로 요약하면, 가족 구성이 바뀌면서 방에 붙던 이름이 안 맞게 됐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방마다 사람 이름이 붙었습니다. 안방, 아이방, 작은방. 지금은 이름 대신 기능으로 부릅니다. 서재, 옷방, 운동방, 창고방. 방문한 집들에서 실제로 들은 표현을 그대로 적으면 "그건 짐방이에요", "저기가 컴퓨터방이고요" 같은 식이었습니다.
이 변화는 통계와도 맞물립니다. 2025년 기준 1인 가구는 계속 늘고 있고, 부부만 사는 가구도 함께 늘었습니다. 방 개수는 그대로인데 사람 수가 줄면 남는 방이 생깁니다. 남는 방은 사람 이름을 붙일 수 없으니 기능 이름이 붙습니다.
남는 방이 채워지는 순서
관찰한 집들에서 남는 방이 채워진 순서에는 어느 정도 규칙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옷이었습니다. 붙박이장이 부족한 집일수록 방 하나가 옷방이 됐습니다. 두 번째는 책상이었고요. 재택근무를 하지 않는 집에서도 컴퓨터 책상은 거실에서 방으로 옮겨가는 경향이 보였습니다. 세 번째는 운동기구였습니다. 실내자전거나 요가매트가 방 한쪽을 차지한 집이 세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순서가 뒤집힌 집도 있었습니다. 24평 아파트에 사는 30대 1인 가구는 방 두 개 중 하나를 통째로 비워두고 있었습니다. "뭘 놓으면 짐이 될 것 같아서요." 아무것도 두지 않는 방. 면적이 여유롭지 않은 집에서 나온 대답이라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드레스룸 30%, 알파룸 5%가 말해주는 것
한 줄로 요약하면, 사람들이 원하는 공간과 실제로 가진 공간 사이의 간격이 꽤 넓습니다.
한국갤럽이 조사한 주택 공간 보유 현황을 보면, 현재 거주하는 집에 드레스룸이 있는 비율은 30%입니다. 펜트리와 분리형 다이닝룸은 각각 24%고, 알파룸은 5%에 그칩니다. 반면 앞으로 이사할 때 갖고 싶은 공간을 물으면 순서가 이렇게 나옵니다.
| 공간 | 현재 보유 | 이사 시 희망 |
|---|---|---|
| 드레스룸 | 30% | 55% |
| 펜트리 | 24% | 47% |
| 분리형 다이닝룸 | 24% | 40% |
| 알파룸 | 5% | 23% |
희망 1·2위가 드레스룸과 펜트리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둘 다 수납 공간입니다. 사람이 머무는 방보다 물건이 머무는 방을 더 원하고 있다는 뜻이죠. 실제로 제가 방문한 집들에서 가장 자주 들은 불만도 "수납이 부족하다"였습니다. 열한 집 중 아홉 집에서 나온 말입니다.
수납이 부족하면 물건이 생활 공간으로 넘칩니다. 거실 한쪽에 종이박스가 쌓이고, 베란다가 창고가 되고, 침대 밑이 서랍이 됩니다. 관찰 기록에 '베란다 = 창고'라고 적힌 집이 다섯 곳이었습니다. 그중 두 집은 세탁기와 건조기까지 베란다에 있어서, 빨래를 널 자리가 남지 않았습니다.
콘센트 위치가 가구 배치를 결정한다
한 줄로 요약하면, 집이 지어진 시기의 전기 설계가 지금의 생활을 붙잡고 있습니다.
열한 집을 돌면서 콘센트 개수와 위치를 세어 봤습니다. 2010년 이후 지어진 집의 거실에는 평균 4.5개, 1990년대에 지어진 집에는 평균 2.5개가 있었습니다. 개수도 개수지만 위치가 더 문제였습니다. 오래된 집일수록 콘센트가 벽 아래쪽 구석에 몰려 있어서, 그 앞에 가구를 놓으면 아예 못 쓰게 됩니다.
그래서 벌어지는 일이 멀티탭입니다. 관찰한 집 열한 곳 중 아홉 곳에서 거실 바닥을 가로지르는 멀티탭 선을 봤습니다. 그중 네 곳은 러그 밑으로 선을 숨겨 두었고요. 한 집에서는 멀티탭이 세 개 연결돼 있었는데, 마지막 멀티탭에 꽂힌 건 공기청정기와 로봇청소기 충전 거치대였습니다.
기기가 늘면 배치가 굳는다
집에 들어오는 전기 기기는 계속 늘었습니다. 공기청정기, 제습기, 로봇청소기, 무선청소기 거치대, 스탠드 조명, 태블릿 충전기까지. 이 기기들은 한번 자리를 잡으면 잘 안 움직입니다. 콘센트가 거기밖에 없기 때문이죠.
결과적으로 가구를 옮기고 싶어도 못 옮기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30대 부부가 사는 18평 아파트에서는 소파 위치를 두 번 바꿨다가 결국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선이 안 닿아서요." 취향이나 동선이 아니라 전기 배선이 거실 배치를 결정한 겁니다.
그래서 요즘 리모델링에서 콘센트 증설이 상위 항목에 올라옵니다. 벽지나 바닥보다 먼저 하는 집도 있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공사인데 생활 만족도에는 크게 작용합니다. 관찰한 집 중 한 곳은 거실 벽 세 면에 각각 콘센트를 새로 냈는데, 그 뒤로 계절마다 가구 배치를 바꾼다고 했습니다. 같은 면적인데 방이 여러 번 새로워지는 셈이죠.
좁은 집은 어떻게 공간을 겹쳐 쓸까
한 줄로 요약하면, 면적을 늘릴 수 없으면 시간을 나눠 씁니다.
원룸 세 집을 관찰하면서 정리한 표현이 '시간 분할'입니다. 같은 6평이 아침에는 옷 갈아입는 방, 낮에는 일하는 방, 밤에는 자는 방이 됩니다. 물리적으로 벽을 세울 수 없으니 시간대로 용도를 나누는 거죠.
이 방식이 유지되려면 전환 비용이 낮아야 합니다. 그래서 원룸에서 자주 보이는 물건들이 정해져 있습니다. 접이식 테이블, 벽걸이 선반, 침대 옆 협탁 겸 수납장, 그리고 바퀴 달린 무엇이든. 한 집에서는 캠핑용 접이식 의자를 실내에서 쓰고 있었습니다. 손님이 오면 펴고 평소에는 접어서 문 뒤에 세워둔다고 했습니다.
겹쳐 쓰기가 실패하는 지점
다만 겹쳐 쓰기에는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세 집 모두에서 같은 문제가 나왔는데, 냄새와 소리였습니다. 요리 냄새가 침구에 배고, 세탁기 소리가 잠자리까지 옵니다. 벽으로 나뉜 집이라면 자연히 해결됐을 일이 한 방 안에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한 거주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밥을 해 먹으면 이불에서 김치찌개 냄새가 나요. 그래서 요리를 잘 안 하게 돼요." 공간 구조가 식생활까지 바꾸는 순간입니다. 의식주가 각각 따로 변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밀고 당긴다는 걸 여기서 봤습니다.
그래서 좁은 집일수록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카페에서 일하고, 편의점에서 먹고, 코인세탁방에서 빨래를 합니다. 집이 작아지면 동네가 집의 일부가 됩니다.
FAQ
거실에서 TV를 치우면 정말 공간이 넓어지나요?
면적이 늘어나지는 않지만 배치의 자유도가 올라갑니다. TV가 있으면 소파 위치가 시청 거리에 묶이는데, 그 기준이 사라지면 창 쪽이나 벽 쪽으로 가구를 밀 수 있습니다. 관찰한 집 가운데 TV를 방으로 옮긴 집들은 대부분 거실에 큰 테이블을 들였습니다. 다만 가족 중 TV 시청 시간이 긴 사람이 있으면 갈등이 생기니, 치우기보다 위치를 바꿔보는 쪽을 먼저 시도해 보는 편이 낫습니다.수납이 부족한 집에서 가장 먼저 손대야 할 곳은 어디인가요?
베란다입니다. 관찰한 집들에서 가장 정리가 안 된 공간이 베란다였고, 동시에 가장 쉽게 되찾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박스를 쌓아두는 대신 선반을 세우면 같은 면적에서 수납량이 크게 늘어납니다. 그다음은 침대 밑입니다. 계절 지난 옷과 이불을 옮기면 옷방 압박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알파룸 보유율이 5%로 낮은 이유는 뭔가요?
알파룸은 설계 단계에서 벽 위치를 조정해 만드는 공간이라, 이미 지어진 집에서는 만들기 어렵습니다. 신축 아파트에서 옵션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보유율이 낮게 나옵니다. 희망 비율이 23%까지 오르는 건 그만큼 용도를 정하지 않은 여유 공간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1인 가구가 6평 방을 나눠 쓰려면 어떻게 시작하나요?
가구를 사기 전에 동선부터 그려보길 권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문밖으로 나갈 때까지 몸이 지나는 경로를 종이에 그리면, 그 선 위에 있는 물건이 실제로 매일 쓰는 물건입니다. 그 선에서 벗어난 물건은 수납으로 보내도 생활에 지장이 없습니다. 접이식 가구는 그다음에 골라도 늦지 않습니다.집 안 공간 변화를 기록으로 남기려면 뭘 찍어두면 좋을까요?
사진 세 장이면 충분합니다. 현관에서 거실을 바라본 사진, 거실에서 가장 오래 앉는 자리에서 찍은 사진, 그리고 베란다 사진입니다. 이 세 장을 6개월 간격으로 찍어두면 가구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물건이 어디에 쌓이는지가 그대로 보입니다. 관찰 기록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준 것도 이 세 각도였습니다.같이 읽으면 좋은 것들
출처
- 2024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 (국토교통부)(GovernmentService)
- 부동산 트렌드: 살고 싶은 주택 (한국갤럽조사연구소)(Report)
- 2025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 결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GovernmentService)
- 2025 통계로 보는 1인가구 (통계청)(GovernmentServ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