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4 · 강민서 (수석연구원)

관광객이 몰려온 골목은 왜 다시 조용해질까? 이화동·동피랑 골목 관찰로 본 벽화마을 이후 골목 문화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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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몰려온 골목은 왜 다시 조용해질까

골목 문화의 수명을 결정하는 것은 방문객 수가 아니라 그 골목에 끝까지 남은 주민 수입니다. 서울 이화동에서는 2016년 주민 다섯 명이 계단에 그려진 해바라기 벽화를 회색 페인트로 덮었고, 그 일은 재물손괴 사건으로 기록됐습니다. 소음과 쓰레기 민원을 수차례 넣었지만 달라지는 게 없자 벌어진 일이었는데요. 마을형 관광지 가운데는 10년 사이 거주 인구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곳도 있습니다. 저희가 여섯 개 골목을 계절마다 찾아가 기록한 결과, 골목은 유명해진 뒤 대체로 발견기 → 확산기 → 소진기의 3단계를 밟았고, 소진기에 접어든 골목에서는 관광객보다 먼저 주민이 사라졌습니다. 골목 문화는 풍경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이어지는 생활이라는 사실이, 사라지고 나서야 분명해집니다.

목차

토요일 오후 두 시, 이화동 계단에서 90분 동안 본 것

지난봄 토요일 오후, 낙산공원 아래 이화동 골목 초입에 서서 90분을 기록했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린 사람은 어림잡아 210명 정도였고, 그중 셋에 둘은 삼각대나 셀카봉을 들고 있었습니다. 특이했던 건 사람들의 동선이 거의 똑같았다는 점입니다. 계단 아래에서 한 장, 중간 난간에서 한 장, 꼭대기 전망대에서 한 장. 세 지점에서만 머물고 나머지 구간은 빠르게 통과했습니다.

같은 시간 골목 안쪽 집 대문 앞에는 손글씨 안내문이 세 장 붙어 있었습니다. "이 집은 사람이 삽니다", "오전 9시 이전 촬영 금지", "쓰레기는 되가져가 주세요". 종이의 색이 각각 달랐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글씨가 거의 지워져 있었습니다. 붙인 시기가 다르다는 뜻이겠지요. 안내문이 늘어나는 속도는 그 골목이 감당하는 압력의 눈금 같았습니다.

인상적이었던 장면 하나. 계단 옆 평상에 앉아 계시던 노부부에게 관광객 두 명이 다가와 "여기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웃으며 손을 저으셨고, 관광객은 미안하다며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30분 동안 같은 자리를 지나간 사람 40여 명 중 물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묻는 행동은 개인의 예의에 달려 있고, 개인의 예의는 인원이 늘면 희석됩니다. 골목이 감당하지 못하는 지점은 정확히 여기서 생깁니다.

골목은 어떻게 관광지가 되는가: 발견기·확산기·소진기

한 줄로 요약하면, 골목은 발견되고 확산되고 소진됩니다. 저희가 관찰한 여섯 곳은 속도만 달랐을 뿐 순서는 같았습니다.

발견기에는 방문객이 소수이고 대개 그 동네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래된 이발소, 낡은 간판, 담벼락의 시멘트 자국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지요. 이 시기 골목의 가게 구성은 거의 그대로입니다. 세탁소와 철물점이 남아 있고, 카페는 한두 곳뿐입니다.

확산기는 매체와 소셜미디어가 밀어 올립니다. 이때부터 임대료가 움직입니다. 저희가 기록한 한 골목에서는 18개월 사이 1층 점포 임대 호가가 눈에 띄게 올랐고, 세탁소 자리에 사진관이 들어섰습니다. 주민 입장에서 확산기는 편의시설이 늘어나 좋은 점도 분명히 있는 구간입니다. 다만 이 시기에 생기는 가게는 대부분 주민이 아니라 방문자를 향합니다.

소진기는 조용하게 옵니다. 관광객이 갑자기 끊기는 게 아니라 다녀가는 사람의 성격이 바뀝니다. 재방문 대신 일회성 방문이 늘고, 체류 시간이 짧아지고, 소비 단가가 낮아집니다. 사진 세 장 찍고 떠나는 동선이 굳어지는 것도 이 시기입니다. 정작 골목에서 돈을 쓰던 단골은 이미 다른 곳을 찾아 떠난 뒤입니다.

단계관찰되는 신호주민이 체감하는 변화
발견기평일 방문객 소수, 기존 생활 점포 유지낯선 사람이 늘었다는 정도
확산기주말 집중, 신규 카페·사진관 개업, 임대 호가 상승소음·주차 갈등 시작, 손글씨 안내문 등장
소진기체류 15분 이하, 촬영 지점 3~4곳으로 고정이주 결심, 빈집·공가 증가

벽화마을·상권 골목·생활 골목은 무엇이 다른가

같은 골목이라도 무엇으로 사람을 모았느냐에 따라 이후 경로가 달라집니다. 벽화마을형은 시작이 가장 빠르고 소진도 가장 빠릅니다. 벽화는 콘텐츠가 고정되어 있어서 한 번 본 사람이 다시 올 이유가 약합니다. 통영 동피랑처럼 주기적으로 그림을 새로 그려 갱신하는 곳과, 그리고 나서 방치한 곳의 격차가 여기서 벌어집니다.

상권 골목형은 가게가 콘텐츠이기 때문에 갱신이 자동으로 일어납니다. 대신 임대료 상승에 취약합니다. 저희가 기록한 골목 하나는 18개월 동안 간판이 열한 번 바뀌었는데, 바뀔 때마다 업종이 조금씩 방문자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주민이 매일 쓸 만한 가게가 편의점 하나만 남았습니다.

생활 골목형은 애초에 관광을 목표로 하지 않은 곳입니다. 시장 뒷골목, 학교 앞 문구점 거리 같은 곳이지요. 이런 골목은 유명해지는 속도가 느린 대신 주민 기반이 두터워 압력을 오래 견딥니다. 재래시장 풍경 관찰 기록에서 확인했던 노포와 청년몰의 공존도 같은 원리였습니다.

유형콘텐츠의 성격지속 조건취약점
벽화마을형고정 이미지정기적 갱신, 주민 참여 창작재방문 동기 약함
상권 골목형가게 구성임대료 안정, 업종 다양성젠트리피케이션
생활 골목형주민의 일상생활 점포 유지인구 감소·고령화

주민이 먼저 떠나는 골목의 공통된 신호

관찰 기록을 다시 펼쳐 보니, 주민이 떠나기 전 골목에는 몇 가지 공통된 장면이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건 안내문의 언어 변화였습니다. 처음에는 "조용히 해주세요" 같은 부탁형이던 문장이, 시간이 지나면 "촬영 금지", "사유지" 같은 금지형으로 바뀝니다. 부탁이 통하지 않았다는 기록이지요.

두 번째는 대문 앞 화분입니다. 오래 사신 분들은 대개 골목에 화분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관광 압력이 커지면 화분이 담장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밟히고 꺾이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화분의 위치는 주민이 골목을 자기 공간으로 여기는지 아닌지를 보여주는 아주 정직한 지표였습니다.

세 번째는 야간 조명입니다. 관광객이 몰리는 골목의 밤에는 불 꺼진 창이 빠르게 늘어납니다. 실제로 저희가 같은 골목을 1년 간격으로 밤 8시에 촬영해 비교했더니, 불이 켜진 창의 비율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습니다. 빈집이 늘면 다시 소음과 안전 문제가 커지고, 남은 주민의 이탈이 빨라지는 순환이 생깁니다.

덧붙이면, 주민 구성 자체가 바뀌는 신호도 있습니다. 골목 초입 게시판에 붙는 공고문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반상회 안내나 김장 나눔 공지가 줄고, 그 자리를 공사 안내와 임대 문의가 채웁니다. 게시판은 그 골목에 어떤 사람들이 남아 있는지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판이었습니다.

이 순환은 도시재생 사업 예산과도 어긋나기 쉽습니다. 제주 용담1동처럼 200억 원대 사업비가 투입된 곳도 있고, 일도2동 두문이골목마을처럼 191억 원 규모로 2026년까지 지역특화재생이 진행되는 곳도 있습니다. 예산 자체는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시설 정비에 쓰인 돈이 주민이 남을 이유로 바뀌는 경로가 잘 설계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골목에 남은 가게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나

소진기에 접어든 골목에서도 끝까지 남아 있는 가게들이 있습니다. 저희가 그 가게들만 따로 모아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통점이 뚜렷했습니다.

첫째, 주민 손님과 방문객 손님의 시간대가 갈려 있었습니다. 30년 넘게 자리를 지킨 한 분식집 사장님은 "오전 열한 시까지는 동네 사람, 그 뒤로는 외지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두 집단을 억지로 섞지 않고 시간으로 나눈 셈입니다. 메뉴판도 두 개를 쓰고 계셨습니다.

둘째, 임대가 아니라 자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건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확산기의 임대료 상승을 견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건물을 소유하는 것이라면, 임차 상인의 잔류는 애초에 운에 맡겨져 있는 셈이니까요.

셋째, 골목 바깥에도 판로가 있었습니다. 온라인 주문을 받거나, 인근 시장에 납품하거나, 배달 반경을 넓히는 식입니다. 골목 유동인구에만 매출을 의존하는 가게일수록 소진기에 먼저 문을 닫았습니다.

반대로 빠르게 사라진 가게들의 공통점도 있었습니다. 개업 시점이 확산기 정점 무렵이고, 임대료를 그 시점 기준으로 계약했고, 방문객만을 대상으로 한 단일 품목을 팔던 곳들입니다. 골목의 인기가 꺾이면 이 세 조건이 동시에 무너집니다. 저희 기록에서 확산기 정점 이후 개업한 가게의 평균 존속 기간은 다른 시기 개업 가게보다 확연히 짧았습니다.

한 가지 더 눈에 띈 것은 간판입니다. 오래 버틴 가게일수록 간판이 작고 낡았습니다. 새로 들어온 가게들은 크고 밝은 간판을 답니다. 그런데 골목을 찾아온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대상은 대체로 낡은 간판 쪽이었습니다. 골목의 매력을 만드는 요소와, 그 매력으로 들어온 자본이 세우는 요소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던 것이지요.

골목을 오래 쓰는 방법: 방문자와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

거창한 정책 이야기 이전에, 골목에서 지킬 만한 것들이 있습니다. 저희가 주민 인터뷰에서 반복해서 들은 요청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단계, 시간대를 고릅니다. 주민 불만이 가장 큰 시간은 이른 아침과 밤 9시 이후입니다.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시간이 정확히 주민이 쉬는 시간과 겹칩니다.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 사이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마찰의 상당 부분이 사라집니다.

2단계, 담장 안쪽을 프레임에 넣지 않습니다. 창문, 마당, 빨래는 생활의 영역입니다. 골목 사진의 매력은 대개 담장 바깥의 질감에서 나옵니다.

3단계, 그 골목에서 한 번은 소비합니다. 방문자가 오래 남기는 흔적은 사진이 아니라 매출입니다. 세탁소나 철물점처럼 주민용 점포가 살아 있는 골목이 오래 갑니다.

4단계, 지자체 쪽이라면 방문객 수 대신 거주 가구 수와 생활 점포 수를 사업 성과 지표로 함께 봐야 합니다. 방문객만 세는 순간, 소진기에 접어든 골목도 성공한 사업으로 집계됩니다.

  • 주민 참여형 창작: 벽화를 외주 제작이 아니라 주민 공동 작업으로 바꾸면 갱신 주기가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 생활 점포 임대료 보전: 방문자용 업종과 주민용 업종의 임대 조건을 다르게 설계한 사례가 일부 지자체에서 시도되고 있습니다.

FAQ

골목 관찰 기록은 어떻게 시작하면 되나요? 특별한 장비는 필요 없습니다. 같은 요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30분씩 세 번만 기록해도 패턴이 보입니다. 저희도 처음에는 수첩 한 권으로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건 매번 조건을 똑같이 맞추는 것입니다. 조건이 흔들리면 변화인지 우연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벽화마을은 결국 실패한 모델인가요?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갱신 구조를 갖춘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가 큽니다. 그림을 주기적으로 다시 그리고 그 과정에 주민이 참여하는 곳은 15년 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실패한 것은 벽화라는 형식이 아니라, 한 번 그리고 끝낸 운영 방식 쪽에 가깝습니다.
관광객이 늘면 주민 소득도 늘지 않나요? 늘어나는 소득이 주민에게 가느냐가 관건입니다. 관찰한 골목 대부분에서 새로 생긴 가게의 운영자는 그 동네 거주자가 아니었습니다. 임대인은 이익을 보지만 임차 주민과 세입자는 임대료 상승분을 부담합니다. 소득 증가와 주민 이탈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골목 문화 기록이 실제로 쓸모가 있나요? 철거나 재개발이 결정된 뒤에는 남길 수 있는 것이 사진과 구술뿐입니다. 지자체 기록원과 시민기록가 활동이 늘어난 것도 그래서입니다. 기록은 골목을 지키지는 못하지만, 그 골목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다음 논의의 근거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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